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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돌아온 탕자 이야기 (비유 시리즈 2) 류모세 9788953116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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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돌아온 탕자 이야기 (비유 시리즈 2) 류모세


사이즈 150*210

isbn 9788953116047


열린다 비유 시리즈는…
예수님의 비유는 신자·불신자를 막론하고 온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쳐 왔다. 비유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 1/3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데, 비유의 대부분이 성서시대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이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 윤리 등을 뒤집어엎는 충격 요법과 깜짝쇼를 즐겨 사용하신다. 부조리와 불합리가 판치는 이 세상을 한바탕 흔들고 뒤집어엎은 후에 비로소 사랑과 공의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신다. 예수님은 이내 비유를 듣는 청중들에게 회개와 구체적인 결단을 촉구하신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청중들에게 비유의 이해를 돕는 주석서나 해설집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생활 속의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엄청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이 땅의 그것과 넌지시 비교하면서 드러내셨다. 이것은 그들 사이에 이미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유를 읽는 현대의 성경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1세기 청중들이 공유하던 공감대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춘향전이나 심청전을 현대인에게 공연할 때 ‘변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배경에 대한 변사의 친절한 설명은 현대인이 공감하고 이해하기 힘든 춘향전과 심청전의 현장 속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셨던 성서시대와 현대인의 간극을 메워주는 변사 역할을 하고자 한다. 독자들은 비유의 보화를 파는 즐거움을 경험할 것이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그동안 탕자의 극적인 회심 과정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바람에 둘째 아들의 존재감만 지나치게 부각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분명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신 교훈과 메시지에서 벗어나게 되는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 류모세는 《열린다 비유-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다루면서 비유에 등장하는 세 명의 캐릭터, 즉 아버지,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이야기를 균등하게 안배하려고 노력했다. 그것만이 예수님께서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 주시고자 한 하나님 나라가 잘 드러나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유형의 탕자를 대표한다. 많은 사람들은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오해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분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자기의 뜻과 계획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한편 다른 부류에 속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첫째 아들처럼 하나님을 종교 생활로 섬기며 그분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분의 커다란 사랑을 오해한다. 이들은 유형만 다르다뿐이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탕자’들이다. 우리에겐 새로운 거듭남이 필요하다. 이것이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호소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본문 속으로]
열린 공동 식사: 열린 예배의 참된 모델
1세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종교적 주류를 차지하던 바리새인들의 눈에 예수님은 어떻게 비쳐졌을까? 확실한 사실은 예수님이 잘 짜인 사회 질서를 위반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물, 즉 사회적 일탈자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식탁 교제를 즐기던 세리와 죄인(창기)들은 바리새인들이 이방인처럼 혐오하던 그룹이었다.
예수님은 여인들과도 공개적으로 어울리셨는데, 이것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서 볼 때 ‘희대의 스캔들’로 비쳐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은 마리아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남녀가 한 식탁에서 교제하는 것을 금하던 1세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예수님의 식탁에 여인 마리아가 나타났을 뿐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 모습은 분명 바리새인들을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도 자신의 사회적 동아리(천국) 속에 포함시키셨다. 당시는 어린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이 노예처럼 간주되던 시기였음을 감안할 때,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대단히 혁명적인 선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 18:16).
이처럼 공생애 사역 내내 예수님이 교제를 즐기던 자들은 당시의 종교적 주류인 바리새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교제를 금해야 하는, 최소한 꺼려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바리새인들이 규정한 사회적(종교적) 경계라는 기준에서 볼 때 경계를 벗어난 사람들(outsider), 즉 이방인처럼 버려진(outcast) 사람들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사회적 이상 행동자요 일탈자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집요하게 이들과 계속 교제하신 것일까? 예수님은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양의 우리에서 벗어난, 아니 당시 목자임을 자처한 종교지도자들이 양의 우리(sheepfold) 바깥으로 내다 버린 ‘잃은 자’(outcast)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감당해야 할 최고의 미션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미션을 감당하기 위해 당시 강력하게 드리워져 있던 사회적 통념과 금기를 과감하게 깨어 부수셨다.
아울러 예수님이 베푸신 식탁에 각종 죄인들과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들이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장차 천국에서 이루어질 식사를 예표하는 구속사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종말 이후 천국에서 베풀어질 잔치에 이방인과 죄인들은 철저히 제외되고 자신들과 같은 의인의 회중만 참여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동 식사를 실행하심으로써 그 어떠한 사회적, 종교적 차별도 과감히 철폐하신 것이다. 아무에게나 열린 공동 식사는 철저한 평등주의, 즉 구성원들 사이에 어떤 차별도 용인하지 않고 그들 중에는 어떠한 계급 조직도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인간 평등사상의 구현이며 상징이다. 예수님이 베푸신 열린 공동 식사야말로 오늘날 유행하는 열린 예배의 참된 모델이 아닐까? 아울러 여전히 계급적 차별이 존재하는 현대의 교회(특히 강남의 대형 교회들)에 던지는 강력한 경고요 경종이 아닐까? p. 37-39


사랑이 많은 아버지와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참된 목적은 당시 청중에게 친숙한 캐릭터와 이미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께 대한 인간의 마땅한 도리를 가르치는 데 있다. 둘째 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반역해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의 전형이다. 첫째 아들은 하나님을 종교적 관습으로 열심히 섬기지만 그분의 위대한 사랑을 오해하고 그 속에 쓴 뿌리를 품고 있는 사람의 전형이다. 첫째 아들은 존경 받고 거룩하게 보이는 죄인의 전형이고, 둘째 아들은 만인의 지탄을 받는 죄인의 전형이다. 스타일만 다르지 결국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죄인일 뿐이다. 우리는 스타일이 다른 두 종류의 죄인을 통해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찔림과 도전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결국 두 종류의 죄인 중 반드시 어느 한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복음의 단순함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부요한지, 심히 괴로울 정도로 인간의 부패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천국의 기쁨이 얼마나 경이로운지에 대해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비유가 탄생한 상황과 목적 그리고 교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오히려 ‘사랑이 많은 아버지와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란 제목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부터 우리는 잃어버린 두 탕자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출발하고자 한다. p. 51-52


수치를 넘어서…
멀쩡히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당당히 유산을 달라고 요구한 둘째 아들의 행위는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져 나갔고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은 순식간에 아버지의 행동에 모아졌을 것이다. 비유를 듣는 청중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그 호기심의 대열에 동참했다. 과연 아버지는 이 되바라진 아들을 어떻게 치리할 것인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둘째 아들은 공개적인 수치와 함께 심하면 돌에 맞아 죽는 것도 각오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신 예수님은 이곳에서 청중의 기대와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놀라운 반전을 시도하신다.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눅 15:12).
아버지는 놀랍게도 그토록 반항적인 아들의 요청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당시 사회에서 이 아버지는 자신의 가부장적 권위를 털끝만큼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둘째 아들의 반항보다 청중을 더 충격에 빠뜨려 곳곳에서 절망과 울분이 짙게 담긴 장탄식이 흘러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유 속에 등장하는 이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무척추동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왜 이 아버지는 막강한 가부장적 권위를 이용해 망나니 같은 아들을 따끔하게 호통이라도 치지 않는단말인가? 이 아버지는 과연 바보인가? p. 89-90


첫째 아들의 무섭고 괘씸한 침묵
당시 사회에서 장남에게 주어진 기대와 책임 그리고 특권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타난 첫째 아들의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문제를 간파할 수 있다. 오늘날 중동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1세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양자 간의 극단적인 충돌은 제3자에 의해 중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가정 내에서 발생한 이런 문제에서는 장남이 최우선적인 중재자로 나설 것이 요구되었다.
둘째 아들의 되바라진 요구를 듣던 1세기 유대인 청중의 눈은 일제히 첫째 아들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첫째 아들은 동생과 아버지가 정면충돌 하는 상황을 미연에 막기 위해 중재자로 나서야 했다. 즉 아버지를 잠시 뒤로 빠지게 하고 동생이 아버지에게 사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장남인 첫째 아들의 당연한 책무였고, 이것이 비유를 듣던 청중이 지극히 당연하게 기대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비유에 나오는 첫째 아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는 침묵했다. 첫째 아들은 동생의 반항 때문에 아버지가 섬뜩할 정도로 공공연한 굴욕을 견디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아버지와 동생의 깨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만, 비유에는 어떤 노력도 했다는 언급이 없다.
또한 동생이 집을 나간 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동생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는 구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이런 첫째 아들의 모습은 청중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이것은 당시의 문화에서 볼 때 장남에게 요구된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것으로 확실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p. 105-106


서프라이즈하고 어메이징한 아버지
탕자 아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대의 성경 독자들에게 가장 진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비유를 듣던 1세기 유대인 청중에게 주는 이미지는 그다지 산뜻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행동은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만한 것이 없었다. 품위도 없고 부끄럽고 더 나아가 풍속을 어지럽히는 행동이었다.
비유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분명 1세기 이스라엘 사회의 문화적 현미경으로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이 아버지는 한마디로 ‘신기하고 얼떨떨하고 어메이징’한 아버지였다. 청중은 이 아버지가 여전히 바보요, 최소한의 명예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얼토당토않는 행동을 한 것일까?
탕자 아들의 귀환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방식은 당시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아들을 향해 쏟아부을 수 있는 온갖 조롱, 비아냥, 욕설, 심지어 폭행까지도 아버지인 자신에게로 돌려놓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그러고는 무릎 위까지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마치 단거리를 달리는 선수처럼 전속력으로 뛰었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을 해코지하기 전에 아들을 가장 먼저 낚아채기 위함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명예와 체면, 자존심을 모두 버렸고, 아버지로서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마저 포기했다. 명예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당시의 문화에서 아버지의 이런 행동은 가히 충격적이고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정확하게 예수님이 행하실(물론 현대의 성경 독자들인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이미 행하신) 십자가의 구속 사역에 대한 완벽한 예표가 된다. p. 183-184


차례

프롤로그  성경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예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 성경 구절


01.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왜 예수님을 비난했을까?
성서시대의 테이블 매너(식탁 교제)


02. ‘돌아온 탕자의 비유’, 과연 비유의 적절한 제목인가?
세 명의 주인공: 아버지, 형 그리고 동생


03. 둘째 아들을 왜 ‘탕자’라고 하는가?
성서시대의 재산상속법


04. 아버지는 왜 순순히 유산을 나누어 주었을까?
하나님은 힘없는 전능자(?)


05. 첫째 아들을 왜 ‘탕자’라고 하는가?
성서시대 장자의 위치와 본분


06. 탕자가 간 먼 나라는 어디일까?
이스라엘 땅에 누비이불처럼 들어와 있던 이방인 도시들


07. 탕자는 왜 갑자기 마음을 돌이켰을까?
돼지치기와 쥐엄열매가 주는 상징들


08. 탕자는 왜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 여겨 달라고 했을까?
참된 회개에 대한 가장 생생한 표본


09. 아버지는 왜 먼저 달려가 아들에게 입 맞추고 포옹했을까?
성서시대, 목숨보다 중히 여긴 수치와 명예


10. 아버지는 왜 살진 송아지를 잡는 성대한 잔치를 배설했을까?
신발, 제일 좋은 옷, 반지 그리고 살진 송아지가 주는 의미


11. 첫째 아들은 동생의 귀향 소식에 왜 ‘폭풍 분노’를 보였을까?
첫째 아들, 불평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대역


참고도서


저자소개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에 응답하여 순종한 그 순간, 그때부터 그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캠퍼스 선교 단체를 통해 처음 예수님을 만난 그는 시종일관 자기 자신을 부인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왔다. 자신은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할 수 없어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기 일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올인 인생’을 결단했다.
세상에서 안락하고 평탄하게 한의사로 살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복음전도자의 삶,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풀타임 사역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한 그의 중심을, 하나님은 아셨고 또 보셨다. 또한 선교사로 부르신 척박한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고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유대인들과 함께 11년을 살아낸 것, 비록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고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영적 무력감에 시달렸지만 그럴 때에도 믿음으로 분투하며 하나님 앞에 충성한 것이 전부 하나님이 카운트하시는 ‘이스라엘 선교’가 되었다.
오직 ‘선교’ 오직 ‘말씀’을 푯대로 하나님께 붙잡혀 산 그에게 아직 달려가야 할 길, 주께 받은 사명이 남아 있다. 한의사, 이스라엘 선교사를 거쳐 그는 이스라엘 선교와 회복을 알리는 문서사역자이자 성경을 사랑하는 이 시대의 성경교사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남은 사명을 감당하되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 찾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 선교사 된 정체성을 가진 사명자로서 오늘도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했고, 히브리의대 세포생리학 석사, 약리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신학과(MTS)를 졸업했다. 온누리교회 파송 이스라엘 선교사로 섬겼고, 현재 <이스라엘 투데이> 편집장, <열린다 성경 아카데미> 대표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 《열린다 성경 난해구절 1》(규장), 《열린다 성경》 전 7권, 《열린다 비유》 전 3권, 《이슬람 바로보기》, 《유대인 바로보기》,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구약편 전 6권(두란노), 《체질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고려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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